믹스가 탁할 때 EQ보다 먼저 점검할 것, 페이더 밸런스

믹스가 탁하게 들리면 손이 먼저 가는 곳이 있습니다. EQ입니다. 어딘가 겹치는 대역이 있으니 깎으면 나아질 거라는 계산이죠. 저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깎을수록 소리가 얇아지기만 하고 답답함은 그대로인 날이 반복됐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세션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트랙들의 크기 관계, 그러니까 페이더 밸런스가 틀어진 채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EQ를 열기 전에 페이더부터 확인합니다. 페이더를 2~3dB 내려보는 10초짜리 진단으로, 지금 문제가 레벨인지 EQ인지부터 가립니다. 그 방법부터 드리겠습니다.
페이더 2~3dB 진단 — 레벨 문제인지 EQ 문제인지
탁하게 만드는 범인으로 의심 가는 트랙의 페이더를 2~3dB 내려봅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확인합니다.
- 혼탁함이 줄면서 곡이 전체적으로 편해졌다 → 레벨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 트랙이 너무 컸던 겁니다. 페이더로 해결합니다.
- 혼탁함은 줄었는데, 그 악기의 첫 타격감이나 음정, 필요한 존재감까지 함께 약해졌다 → 일부 대역만 충돌하는 문제라는 신호입니다. 페이더는 그 트랙의 모든 대역을 함께 내리니까요. 페이더를 되돌리고, 충돌하는 대역만 EQ나 컴프레서 계열 처리로 정리합니다.
이 진단이 먼저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EQ를 얼마나 깎을지, 컴프레서를 얼마나 걸지, 리버브를 얼마나 줄지는 전부 그 악기가 믹스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기준으로 정하는 판단입니다. 크기 관계가 틀어진 채로 내린 판단은, 크기를 고치는 순간 전부 다시 들어봐야 합니다. 탁함의 원인 자체는 저중역 쏠림부터 과한 잔향까지 여러 가지지만, 어느 쪽이든 기준부터 바로잡아야 어디를 깎을지 정확히 들립니다.
페이더는 악기를 앞뒤로 세우는 도구입니다
믹싱 엔지니어 댄 워럴은 좋은 믹스의 기초를 밸런스, EQ, 다이내믹스, 앰비언스 넷으로 정리하면서 밸런스를 나머지 판단의 출발점에 놓습니다. 같은 영상에 나오는 역사 한 토막이 재미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의 슬라이드형 페이더는 지금과 반대로 엔지니어 쪽으로 당길수록 소리가 커지게 놓였다고 합니다. 소리를 키우는 일이 악기를 내 쪽으로 끌어오는 일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소리의 거리감은 여러 요소가 만들지만, 음량은 그중 중요한 단서입니다. 대체로 큰 소리는 가깝게, 작은 소리는 멀게 들립니다. 그러니 페이더를 잡을 때는 음량계보다 무대를 떠올리는 편이 유용합니다. 악기들을 앞뒤로 세우는 일이라고요. 상대 레벨이 틀어진 믹스에서는 악기들이 앞뒤 없이 비슷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떠듭니다.
전형적인 밸런스 실수 세 가지
워럴이 꼽는 전형적인 실수 셋을, 제 세션에서 겪은 처방과 함께 적습니다.
보컬이 너무 작다. 반주를 공들일수록 보컬을 그 속에 묻고 싶어지는데, 보컬 중심 곡에서 청자는 보컬부터 듣습니다. 보컬이 작으면 곡 전체가 흐릿한 인상이 되고, 그 흐릿함은 반주를 깎아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이더로 보컬을 먼저 앞에 세우고, 그다음에 반주의 어디를 비울지 정합니다.
드럼이 너무 작다. 미터에 속아서 생기는 실수입니다. 드럼은 첫 타격이 짧고 강해서 미터의 순간 최고치는 높게 찍히지만, 그 뒤가 짧아서 화면에 찍힌 수치만큼 크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순간 수치만 보고 다른 악기와 맞추면 드럼을 지나치게 내리게 됩니다. 미터는 참고만 하고, 드럼이 곡을 끌고 가는지는 귀로 판단합니다.
베이스가 너무 크다. 베이스는 다른 악기에 가려 잘 안 들리니 자꾸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저역은 귀에 들리는 것보다 차지하는 에너지가 커서, 안 들린다고 올린 베이스가 저역 전체를 메우고 킥과 서로를 가리게 됩니다. 워럴의 처방은 그 반대입니다. 깊은 저역은 그 대역에서 경쟁하는 다른 소리를 정리해서 얻는 것이고, 이를테면 킥이 담당할 아래쪽 대역과 베이스가 앞설 대역을 EQ로 나눠주는 식입니다. 올리고 싶어질 때가 사실은 정리할 때라는 뜻입니다. 보컬 새추레이션 때문에 저역이 탁해진 경우도 같은 원칙으로 다뤘습니다. 깎기 전에 원인부터.
밸런스를 처음부터 다시 잡는 순서
진단으로도 감이 안 잡히거나 믹스가 전반적으로 무너져 있으면, 밸런스를 처음부터 다시 잡습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 믹스용 처리만 잠시 끕니다. 기준은 플러그인 종류가 아니라 “꺼도 그 소리의 정체성이 유지되는가”입니다. 믹스 단계에서 얹은 EQ·컴프레서류는 끄고, 가상악기나 앰프 시뮬레이터처럼 소리 자체를 만드는 처리는 켜둡니다. 좌우 배치(팬)와 이미 그려둔 볼륨 곡선은 그대로 두고, 채널 페이더만 다룹니다.
- 페이더를 내리고, 곡의 중심부터 하나씩 올립니다. 가장 먼저 들려야 하는 트랙이 출발점입니다. 보컬 곡이면 보컬과 드럼, 비트 중심 곡이면 킥과 스네어. 그다음 베이스, 그다음 나머지. 이 단계에서는 오직 크기 관계만 봅니다.
- 페이더만으로 이미 그럴듯해야 정상입니다. 여기서 안 되는 트랙이 남으면 그때 EQ를 엽니다. 이제 EQ의 일은 분명합니다. 비슷한 음역에서 서로를 가리는 악기들을 구분되게, 더 중요한 쪽이 앞서게 정리하는 것.
하나 더. 밸런스는 한 번 잡고 끝나지 않습니다. 파트가 바뀌면 어울리는 크기 관계도 바뀌어서, 벌스(절)와 코러스(후렴)의 페이더가 다를 수 있다는 것까지 받아들이면 믹스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디에서 글에서 양 조절을 전체 믹스에서 판단하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음에 믹스가 탁하게 들리면, EQ 말고 페이더에 먼저 손을 얹어 보세요. 2~3dB 내려보는 10초 안에 첫 단서가 나옵니다.
여백 — 반대 사례도 고백해 둡니다. 트랙 수십 개가 서로를 가리는 세션에서는 저도 이 순서를 그대로 못 지킵니다. 다만 다짜고짜 깎지는 않고, 트랙을 몇 덩어리로 묶은 뒤 끄고 켜 가며 어느 소스가 문제인지부터 찾습니다. 겹침이 확인된 굵직한 충돌만 깎아 시야를 틔운 다음, 그제야 페이더로 돌아옵니다. 순서는 원칙이지 법이 아닙니다.
참고 — The 4 Fundamentals of a Good Mix (Dan Worrall,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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